이선예 할머니의 방물모자 사랑 이야기 기사의 사진

[미션라이프] 지난 연말 할머니 한 분이 털실로 짠 방울모자를 잔뜩 들고 교회를 찾았다. 교회 교역자들은 할머니가 누군지 금방 알아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5년 동안 우유를 줘서 고맙다고, 그 고마움에 감사를 하고 싶어서 방울모자를 만들어 왔다고 했다. 뜻밖의 선물에 교역자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고 방울모자는 말해줬다.◇교회의 사랑=옥수중앙교회는 서울 옥수동길 언덕 중턱에 서 있다. 1970년 교회가 세워질 때 이 동네는 몹시 가난했고, 재개발 바람이 한창인 지금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2001년 2대 담임으로 부임한 호용한 목사는 ‘지역을 살리는 교회’를 목회 방침의 우선으로 삼았다. 그는 부임 초기 나이 많은 한 성도가 정착금으로 쓰라고 준 2000만원을 종잣돈으로 장학복지사업을 본격 시작했다. 많은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동참했다. 자식들에게 용돈을 타 쓰는 노인 성도들도 매달 1만원, 2만원씩 보탰다.

그렇게 옥수중앙교회는 지금껏 사랑의 쌀 나누기, 독거노인 전기세 지원, 결식아동 점심 값 지원, 가난한 학생 장학금 지원 등을 벌여왔다. 성도 30% 정도가 월수입 100만원 이하인 교회지만 연간 7000만~1억 원의 기금을 이웃들을 위해 쓰고 있다. ‘사랑의 우유 나누기’도 그중 하나다. 2005년 1월부터 인근 독거노인 120가정에 매일 우유를 지원하고 있다. 호 목사는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나눔과 사랑”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사랑=이선예(72) 할머니는 시내버스 421번 종점 근처 공동주택 3층 방 한 칸에 산다. 사람 하나 지나기 힘들 정도로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할머니의 2평짜리 방이 있다. 그나마 재개발이 들어오면 비워줘야 하는 곳이다.

어느 날 옥수중앙교회 성도들이 찾아와 우유를 넣어 주겠다고 했다. 그 뒤로 200㎖ 흰 우유가 꼬박꼬박 배달됐다. 할머니는 아침밥 대용으로 당뇨약, 고혈압약 등과 함께 우유를 마셨다. 충남 부여에서 올라와 홀로 지낸 지 20여년, 처음 세상으로부터 받는 ‘대우’에 할머니는 너무나 고마웠다.

지난 여름, 할머니는 답례를 결심했다. 그는 동대문시장에 나가 일제 중고 털옷을 10만원 넘게 샀다. 기초생활보장 지원금으로 사는 그에게는 큰 돈이었다. 할머니는 그 털옷을 일일이 풀어 값 싸고 질 좋은 털실을 마련했다. 그리고 한코 한코 방울모자를 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꼬박 매달리면 3개 정도가 만들어졌다. 가을을 지나 겨울이 왔을 때 100개의 방울모자가 완성됐다. 할머니는 연말 교회에 방울모자를 전했다. 한꺼번에 들기 무거워 50개씩 나눠 비닐봉지에 담은 뒤 두 번을 날랐다. 이 방울모자는 교회 유치부와 초등부 아이들에게 골고루 전해졌다. 호 목사는 설교 시간에 직접 모자를 써 보이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목사님과 교회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너무 고마워해서 내가 도리어 미안했다”며 “올해도 만들어서 선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10일 할머니는 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할머니는 “얼른 마음이 열리지 않아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았는데 사람 사는 정이 있는 교회에 한 번 다니고 싶어졌다”고 했다. 호 목사는 할머니에게 예쁜 성경책을 선물하기로 약속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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